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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 지배권 쟁탈 경쟁의 결과

by 공부하는 샤샤 2026. 6. 9.

북아메리카 지배권 쟁탈 경쟁의 결과. 서유럽 문명의 역사와 함께 뉴올리언스의 희망찬 미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북아메리카 지배권 쟁탈 경쟁의 결과
북아메리카 지배권 쟁탈 경쟁의 결과

서유럽 문명의 역사, 북아메리카 쟁탈 경쟁

서유럽 문명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 온 환경에 대한 도전의 전형적인 예증은, 대여섯 정도의 개척 이민 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진 북아메리카의 지배권 쟁탈 경쟁의 결과이다. 이 경쟁의 승자는 뉴잉글랜드(현재 미국 동 북부 대서양 연안 지역)인이었는데, 우리는 이미 전장에서, 결국 미대륙의 지배자가 된 사람들이 최초로 정착할 운명이 된 지역의 환경이 대단히 어려웠던 것이라고 말했다. 타운힐의 폐허 도시가 좋은 본보기를 보이는 이 뉴잉 글랜드의 자연환경을, 뉴잉글랜드 인과 경쟁하여 패한 네덜란드 인•프랑스 인•에스파냐 인, 게다가 대서양 연안의 남부 버지니아와 그 주위에 정주한 다른 영국인 식민자들이 제일 처음으로 살았던 다른 미국 지역의 자연환경과 비교해 보자. 이들 집단의 전부가 미대륙의 외각에서 최초의 발판을 확보한 17세기 중 엽 무렵에는 언젠가 이 집단 간에 내륙의 소유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는 일은 용이했겠지만, 당시 살아 있던 사람 중 아무리 선 견지명이 있는 관찰자라도 1650년에 있었던 그 경쟁의 승자를 골라내라고 했다면 아마 당치도 않은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 관찰자는 어쩌면 에스파냐 가 승리를 위한 두 가지 명백한 이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스파냐 인을 승자에서 제외할 만한 견식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 두 가지 이점이란 하나는 북아메리카의 유일한 문명 개발 지역인 멕시코를 영 유하고 있었던 일이며, 또 하나는 실제로-황금기보다 기울었지만 -여전히 에스파냐가 유럽 열강 사이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일이다. 우리가 가상한 관찰자는, 멕시코는 위치가 중심에서 너무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또 에스파 나의 명성은 그 무렵에 끝난 유럽 전쟁에서 에스파냐가 거듭 패했다 는 이유로 에스파냐의 위세는 추락했을 것이며, 관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는지도 모른다. "유럽에서 에스파냐의 육군으로서의 패권을 이어받은 것은 프랑스이며, 해상에서 해군국 및 상업국으로서의 패권을 이어받는 것은 네덜란드와 영국 일 것이다. 그러므로 북아메리카의 쟁탈전은 네덜란드• 프랑스•영국의 3국간 에서 벌어진다. 근시적으로 보면 네덜란드가 가장 유망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네덜란드는 해상 세력으로서 영국이나 프랑스보다도 우세하고, 또 미국에 있어 내륙으로 물이 드나드는 훌륭한 수문인 허드슨 강 유역을 쥐고 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보면, 프랑스가 승리자가 될 것 같다. 프 랑스는 한층 더 훌륭한 물의 문 세인트로렌스 강을 쥐고 있으며, 또 압도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으로 네덜란드 본국을 황폐케 하고, 병력의 이동을 불가능케 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자 집단은 양쪽에서 다 쥐고 있다"라고 그는 부언했을 것이다. "나는 확신을 갖고 제외할 수 있다.

 

뉴올리언스, 희망찬 미래

남부의 영국인 식민지는 비교적 온화한 땅과 기후의 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어쩌면 미시시피 강 유역을 획득하는 프랑스인이나, 네덜란드인이나, 내륙에서 먼 땅의 형태로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즉 황량한 불모의 뉴잉 글랜드의 소식민지군은 항구 쪽 허드슨 강의 네덜란드 인에 의해 동포로부터 동떨어져 있게 되고, 한편 프랑스 인이 세인트로렌스 강방면부 터 침입하여 압박을 가하고 있으므로 마침내 소멸될 운명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상한 관찰자가 세기가 바뀔 때까지 살아 있어 그 무렵의 형세를 관망했다고 가정하자. 1701년 경우에는 프랑스 쪽이 네덜란드보다도 유망하 다고 예측한 일을 득의만만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네덜란드 인은 1664년에 허드슨 강을 순순히 경쟁 상대자인 영국인에게 양도한 데 비해, 프랑스 인은 그동안에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 5 대호 지방에 다다르고, 다시 거기서 육로를 거쳐 미시시피 강 유역에 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살은 미시시피 강을 타고 내려가 하구로 나와 그곳에 새로운 프랑스 식민지 루이지애나를 건설했다. 그리고 이 루이지애나의 항구인 뉴올리언스는 희망찬 미래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에 대해서는 우리 관찰자는 예측을 변경하는 이유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뉴잉글랜드 인은 뉴욕을 획득함으로써 소멸에서 구출되었을 테 지만, 남쪽의 그들 동족과 마찬가지로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뿐이었다. 아 메리카 대륙의 장래는 사실상 결정된 것처럼 생각되었다. 승리자는 프랑스 인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관찰자에게 다시 한번 1803년의 정세의 생을 주기 위해 초 인적인 수명을 부여하기로 하자. 만일 그 무렵까지 살려 뒀다고 한다면, 그 는 그의 지혜가 그의 장수에 적합지 않았다는 것을 자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 다. 1803년의 끝 무렵, 프랑스의 국기는 북아메리카의 정치 지도 위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춰 버렸다. 캐나다가 영국령이 된 지 40년이 지났고, 한편 루이지애나는 일단 프랑스로부터 에스파냐에 넘어갔다가 다시 프랑스에 반환된 뒤 당시 나폴레옹에 의해 합중국-13개 주의 영국 식민지로 설립된 새로 운 대국-에 팔린 것이다. 이 1803년이라는 해에는 합중국이 이 대륙을 완전히 손에 넣었고, 예견의 범위는 축소되었다. 남은 것은 합중국의 어느 지방이 이 광대한 땅을 보다 많이 차지하느냐를 알아맞히는 일이다. 더구나 이번이야말로 틀림없을 것이다. 남부 여러 주가 합중국의 명백한 지배자이다. 현재 남부의 여러 주는 서부 획득을 둘러싼 경쟁의 막판 싸움을 어떻게 전개하는가를 보자. 켄투르 크주를 건설한 것은 버지니아 구석의 미개척지 주민이었는데, 켄투르크는 오랜동안 프랑스 인과 공모하여 영국인 개척자들 내륙 침입을 저지하고 있던 산맥의 서쪽에 세워진 최초의 새로운 주이다. 켄투르 크 오하이오 강을 따라 가로놓여 있으며 오하이오 강은 미시시피 강에 통하 고 있다. 또 한편 랭커셔에 새로 출현한 방적 공장들은 호적한 땅과 좋은 기 후의 혜택으로, 남부 주민에게 그들이 재배하는 면화의 증산과 점점 확대해 가는 시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또 1807년에 그는 남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우리의 양키 사촌은 최근, 우리의 미시시피 강을 건너는 기선을 발명하 고, 또 우리의 면화를 타면 하고 세척하는 기계를 발명했다. 그들의 '양키적 신 고안'은 솜씨 있는 발명자 자신을 이롭게 하기보다는 우리를 더 이롭게 한다." 만일 예상이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이 늙은 예견자가 당시 남부 여러 주에 사는 주민 스스로가 내린 전망을 남부 사람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되리라고 생각한다면 노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쟁의 막판 단계에 있어 남부 사람들은, 앞서 네덜란드 인과 프랑스 인이 영국인에게 당한 것과 마찬 가지로 빠르고 철저한 패배를 만나게 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서부 획득 경쟁, 철도 시대의 시작

1865년에는 이미 형세는 1807년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변해 버렸다. 서부 획득 경쟁에서, 남부의 식민자는 경쟁 상대인 북부인에게 추월당해 포위되어 버렸다. 인디애나 주를 지나, 머지않아 5 대호 지방에 달하게 되는 곳까지 진출하여 미주리 주를 곧 입수한(1821년) 다음에 남부인은 캔자스 주에 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해 (1854~60년) 결국 태평양에 이를 수 없게 되었다. 바야흐로 뉴잉글랜드 인이 시애틀에서 로스앤젤레스에 이르는 태평양 연안 일대의 지배자가 되었다. 남부인들은 미시시피의 기선이 서부 전체를 경제 적• 정치적 관계의 남부적 체제 속에 끌어들일 것이라고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양키적 신 고안'은 정지한 게 아니다. 철도 기관차가 기선에 이어 출현했고, 기선이 남부인에게 준 이상의 것을 남부인으로부터 빼앗아갔다. 왜냐하면 허드슨 유역과 뉴욕의 대서양으로부터 서부에 이르는 대문으로서 의 잠재 가치가 마침내 철도 시대가 되자 현실화되었기 때문에 시카고에서 뉴욕까지의 철도 시대가 도래했다. 대륙 내부의 교통 노선은 수직 방향에서, 수평 방향으로 대치되었고 서북부는 남부에서 떨어져 나와 이해관계와 감정 관계로 동북부에 결합되었다. 사실상 원래 남부에 기선과 면화 기계를 전한 동부인은, 바야흐로 이중의 선물로 서북부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오른손에는 기관차, 왼손에 는 곡물을 베어 단으로 묶어내는 기계를 들고 와 서북부인이 골치를 앓던 수 송과 노동력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수단을 제공했다. 이 두 가지 '양키적 신 고안'에 의해 서북부가 어느 쪽에 붙느냐 하는 것은 결정되었고, 남북전 쟁(1861~1865년)은 싸우기 전부터 남부의 패배로 결정되어 있었다. 경제적 패배를 군사적 반격에 의해 회복하려고 무기를 들고 일어섰을 때, 남부는 다 만 이미 피할 길이 없게 된 붕괴를 충진 할 뿐이었다. 북아메리카의 여러 식민 집단들은 모두 그 환경에서 심한 도전을 받았다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인은 캐나다에서 거의 극지와 변함이 없는 겨울철을 만났고, 루이지애나에서는 환경의 비교에서 말한 최초의 중국 황하와 거의 비슷한 무서운 재해를 일으키는 강물의 범람을 겪어야만 했다. 하여 간 토질과 기후, 교통 기타 일체의 면에서 뉴잉글랜드 인이 최초로 정착한 식민지가 가장 험란한 땅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북아메리카의 역 사는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극복하려는 자극이 크게 작용한다는 명제에 유리 한 증언을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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