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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의 인과응보-일시적인 제도의 우상화

by 공부하는 샤샤 2026. 6. 12.

창조성의 인과응보-일시적인 제도의 우상화. 헬라스 사회의 도시 국가제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창조성의 인과응보-일시적인 제도의 우상화
창조성의 인과응보-일시적인 제도의 우상화

헬라스 사회의 쇠퇴와 해체

헬라스 사회의 쇠퇴와 해체에 있어 도시국가 제도(본디의 영역 안에서는 참으로 빛나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동시에 인간의 손으로 된 것이 항상 그렇듯이 일시적인 것이 된 체제)의 우상화가 이행한 역할을 조사할 때, 이 우상적 체체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방해가 된 경우를 두 가지로 구별하여 취급해야 한다. 두 가지 중 첫 번째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다른 문제와 관련지어 검토했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히 끝낼 수가 있다. 우선 우리가 솔론의 경제 혁명이라 일컫는 개혁은 필연적으로 어떤 형태든지 헬라스 사회와의 정치적 연합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하려던 아테네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서 헬라스 사회의 쇠퇴라 진단한 것과 같은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 실패의 원인은 관계자 모두가 도시 국가의 주권을 장래에까지 끌고 나가지 못한 점에 있음은 명백한 일이다. 그런데 이 피해 갈 수 없는 중심적인 문제가 미해결로 남아 있던 시점 바로 뒤(기원전 4세기부터 3세기로 넘어서는 시기에) 헬라스 사회의 역사가 제2기에서 제3기로 이행하면서 헬라스 사회의 지배적 소수자가 스스로 구한 부차적인 문제가 나타났다. 이 시기의 주요한 외면적 징후는 헬라스 사회의 생활에 대한 물적 규모의 급격한 증대였다. 그때까지 지중해 수역의 연안에 국한되어 있던 해상 세계가 다르다넬스 해협으로부터 인도에까지 달하고, 올림포스 산이나 아펜니노 산맥으로부터 도나우 강이나 라인 강에 달한다는 식으로, 육로를 거쳐 넓어져갔다.

 

전통적인 헬라스 사회의 지방 주권 형태

구성단위인 도시 국가 상호 간에 법과 질서를 세운다는 정신적인 무게를 해결하지 않은 채로 이처럼 큰 규모로 팽창한 사회에서는 주권을 가진 도시 국가의 제도가 너무도 작아 이미 정치 생활의 단위로 쓸모가 없게 되어 버렸다. 이 자체는 결코 불행한 일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전통적인 헬라스 사회의 지방 주권 형태가 시대에 뒤 떨어지게 된 것은 지방 주권이라는 성가신 것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는, 하늘에서 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만일 알렉산드로스가 좀 더 오래 살아 제논이나 에피쿠로스와 손을 잡고 있었다면, 아마 헬라스는 도시 국가에서 곧장 '세계 도시'로 옮겨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헬라스 세계는 다시 새로운 창조적 생명을 연장하는 새로운 유예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의외로 빨리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헬라스 세계는 그의 후계자가 멋대로 하게 되었고 서로 다투 는 마케도니아의 무장들이 각축전을 벌였으므로, 알렉산드로스가 열어놓은 새로운 시대에도 여전히 지방적 주권 제도가 존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헬라스 사회의 생활이 도달한 새로운 물적 규모에 있어 하나의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지역 국가의 주권제를 보존할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주권을 가진 도시 국가는 더 큰 규모의 새로운 국가에 길을 양보해야만 했다. 그러한 새로운 국가들은 순조로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220년 에서 168년에 걸쳐 로마가 그 경쟁 상대 전부에게 준 치명적인 타격의 결과로써, 이런 국가의 수가 갑자기 줄어 하나로 되어 버렸다. 자발적인 연합 조직을 만드는 기회를 놓친 헬라스 사회는 세계 국가의 테두리에 묶이는 처지에 빠졌다. 그러나 당면 목적으로 보아 흥미를 끄는 점은,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가 헬라스 사회의 도전을 패배시키자, 이번에는 다시 로마가 응전하였다. 그리고 그 응전의 소지를 만든 로마 이외의 손으로 이루어진 모든 예비 공헌도 모두 도시 국가 주권제라는 우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은 헬라스 사회의 성원에 의해 이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로마 국가의 구성 원리는 그와 같은 헬라스 사회 체제의 우상화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구성 원리는 소위 '이중 시민권'으로서, 각 시민은 그가 태어난 지방의 도시 국가에 충성을 바침과 동시에 로마가 창설한 가장 큰 정치 조직에 충성을 바치는 일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 시민권과 이중 충성심을 잘 극복해 갈 수 있는 창조적인 타협은 도시 국가에 대한 우상 숭배가 시민의 마음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상태가 아닌 지역 사회에서만이 비로소 심리적으로 가능했다. 헬라스 세계에서 지방 주권의 문제와 오늘날 서유럽 세계의 지방주권 문제와의 유사점을 지금 여기서 특별히 강조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다음 사항만을 말해 두자.

 

서유럽의 역사적인 국민국가 구제 수단

헬라스 사회의 역사에 비추어 만일 현재 서유럽 사회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그것은 국가적 주권 제도가 우상적 숭배의 중심이 되어 지방주권 숭배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은 곳에서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정치적 사상과 감정이 모두 영광된 과거의 상징인 지방 주권에 결부되어 있는 서유럽의 역사적인 국민 국가에서 구제 수단이 출현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서유럽 사회가 꼭 필요한 지방 주권을 한 단계 높은 법의 규제 아래 둠으로써, 피할 수 없는 치명적 타격으로 맞이할 절멸의 비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적 연합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와 같은 에피메테우스적 (나중에 생각하는) 심리적 환경에 있는 나라에서는 아닐 것이다. 만일 이상과 같은 발견이 이루어진다면, 그 발견이 구체적인 형태로 국제적인 연합이 실현되는 정치적 실험이 행하여지는 실험실은 오랜 역사를 가진 유럽의 한 국민 국가의 경험과 해외의 몇몇 신흥국의 유연함을 결합시킨 영국 연방과 같은 정치 조직이거나, 아니면 많은 비서방 민족을 서방의 혁명 사상 (예를 들면, 마르크스의 철학 사상을 도입한 일)에 입각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사회에 조직하려는 소비에트 연방과 같은 정치 조직일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은 셀레무코스 제국과 비슷하며, 대영 제국은 로마 제국과 비슷하다. 과연 이런 것이 아니면 이와 비슷한 현대 서유럽 세계 주변에서 발견되는 정치 조직이, 결국 제2차 대전 중에 국제 연맹이라는 형태로 행하여진 최초의 시도를 하게 되었지만, 과연 그 대신 두 번째의 기도로서 현재 우리가 이룩하려는 갓 생긴 국제 조직에 좀 더 실질적인 내용을 줄 수 있을 정치구조를 더 늦기 전에 배출케 할 수 있을까? 그 점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만일 이들 개척자가 실패한다면 국민 주권을 우상으로서 떠받들고 있는, 융통성 없는 우상 숭배자가 이 임무를 결코 달성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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