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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만남, 응전의 다양성

by 공부하는 샤샤 2026. 6. 14.

문명의 만남, 응전의 다양성. 문명의 만남 부분을 응전의 다양성과 함께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문명의 만남, 응전의 다양성
문명의 만남, 응전의 다양성

문명의 만남에 대한 조사

문명의 만남을 조사해 보고 알게 되는 분명한 점은, 특히 우리가 대표적인 예로 취급했던 만남의 연쇄를 조사해 보면 한층 더 뚜렷이 알 수 있다. 그것은 만남이 일어날 경우, 거의 언제나 한쪽이 공격자가 되고, 다른 한쪽은 공격의 희생자가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표현은 도덕적 판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며 도덕적으로 무색 투명한 '작용자'와, '반작용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든가, 또는 이 '연구'의 첫머리에서 사용했던 낯익은 표현을 빌어서 '도전하는 쪽'과 '도전을 받는 쪽'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도전당한 사회가 나타낸 반응 또는 응전의 종류를 고찰하여 분류하는 일이 이 절의 목적이다. 첫 작용자의 공격이 압도적인 나머지 공격당한 쪽이 효과적인 저항을 나타내지 못한 채 복종을 당하게 되거나, 전멸당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불운하게도 문명과 만난 많은 미개 사회는 근대 서유럽 인이 마우리티우스섬에 나타남과 동시에 전멸한 도도새처럼 멸망해 버렸다. 도도새보다 어느 정도 행복했던 미개 사회도 인간 '동물원' 또는 지정 보존구역 안에서 인류학자의 연구 재료가 되어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문명이며, 이미 앞서 그 이유를 말했듯이 어떤 문명도-중미나 안데스 아메리카의 약하다 약한, 언뜻 보기에 재기불 능의 상태로 파괴된 듯이 보이는 문명조차도-이러한 운명에 빠졌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한 운명 역시 마치 시리아 문명사회가 1000년간 헬라스 문명사회의 지배 아래 매몰되어 있다가 다시 모습을 나타내어 생명을 되찾았듯이 오랜 가사 상태에서 소생하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공격을 받은 문명이 나타내는 갖가지 반응에서 우선 최초로 반작용을 일으키게 한 작용과 같은 수단으로 보복을 하는 반격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반격의 가장 현저한 형태

반격의 가장 현저한 형태는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답하는 일이다. 예컨대 침략적인 이란 사회 이슬람교도의 군국주의로 인해 희생자가 된 힌두교도와 그리스정교도는 스스로 전투적인 태세를 취함으로써 보복을 했다. 시크교도와 마라타족의 무굴인에 대한 보복, 그리스 및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오스만에 대한 보복도 그러하다. 역사상 군사적으로 열세한 쪽이 공격자의 군사 기술을 배워 반격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그의 군대가 나르바에서 스웨덴의 카를르 12세에게 비참한 패배를 당했을 때, "그가 우리에게 그를 이 겨낼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가의 여부가 큰 문제가 아니며, 사실상 말한 대로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즉 카를르가 가르쳤고 표트르가 배웠으며, 결국 카를르가 지고 말았으니까. 표트르의 정치 체제에서 후계자가 된 공산주의자는 표트르보다 한 수 앞선 응전을 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그리고 그 뒤에 연달아 러시아의 적국이었던 서유럽 사회 독일과 아메리카의 공업 기술과 군사 기술을 배우는 것만으로 만족치 않고, 물적인 힘으로 싸우는 구식방법 대신 '이데올로기'적 선전을 주요 무기로 해서 싸우는 새로운 싸움의 형식을 생각해 냈다. 공산주의자가 국제 간의 실력 정치 무대에 들고 나온 '선전'이란 수단의 신무기는 그 이용자가 무에서 창조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먼저 고등 종교의 전도자에 의해 만들어졌고, 다음으로 근대 서유럽의 상인 사회에 의해 상품의 판로 확장 목적에 합치되도록 개조된 것이다. 공산주의자의 선전은 경비를 아낌없이 투입하여 '시장 조사'에 모든 노력을 진력하는 현대 서유럽의 상업 광고술과 거의 같은 정도의 열정이었으나, 상업 광고와는 별도로 가장 중요한 결과를 목표로 삼고 그것을 실현했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기아 상태에 있는 서유럽인의 영혼 속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열광적 신앙을 일깨웠다. 그리고 영혼의 양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으로서, 서유럽 인은 그것에 굶주리고 있었으므로 공산주의자가 그들에게 하는 말을 신의 말인지, 반그리스도의 말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통째로 삼켜 버렸다. 공산주의는 그리스도교 시대가 사라진 현대 인간을 '당연히' 불신할 '저 세상'의 유토피아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향수를 버리고, '실존하지 않은' 신을 믿기보다는 실존하는 인류에게 그 충성심을 바치고 인류를 위해 모든 능력을 기울여 지상 천국의 실현에 노력하기를 요구한다. '냉전'이란 요컨대 물적 군비면의 도전에 대해 선전으로 맞대결하는 응전에 불과하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결코 구식의 군사적 도전이 야기시킨 최초의 비군사적 응전인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 러시아의 '정신적' 응전이 서유럽인에게 준 정신적 감명은 이데올로기적 선전이 이미 물질 적인 힘을 발휘하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된 제국주의적 강국에게 보조적 무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하면 꽤 줄어들 것이다. 이제 힘에 대한 보복으로서 힘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서도 역시 그것을 뭔가 도덕적으로 뛰어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군사적 도전에 대한 평화적 응전

그 경우를 조사해 보면, 대개는 충분한 힘을 발휘하기가 불가능했거나, 아니면 폭력적 반항을 시도하여 실패했거나 둘 중의 어느 하나임이 판명된다. 군사적 도전에 대한 평화적 응전에서 주목해야 할 예는 시리아 문명사회 가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에 세계 국가의 지배자가 된 이란 야만족을 문화적으로 전향시켜 바빌론 문명 세계를 포위하게 된 사실이다. 이처럼 이란인의 영혼을 사로잡음으로써 정보자인 바빌론 인을 이겨낸 시리아 문화의 전파자는 군사적 모험가도 아니요, 상업적 모험가도 아니었다. 그들은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의 무장들이 그들이 사랑하는 이스라엘이나 유대의 군 사적•정치적 세력 회복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하기 위해 국외로 데리고 간 이스라엘•유대 '유민'이며 그들 정복자의 눈짐작은 그 자리에 한해서만은 어긋남이 없었다. 그러나 바빌론 문명의 군국주의자에게 희생된 시리아 인이 마침내 압제자의 손에서 주도권을 빼앗게 된데 대한 반응은 압제자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항들이었다. 압제자는 문화면에서 역공의 가능성을 전혀 고려치 않았기 때문에, 만일 이들 국외 추방자가 피추방자의 의지에 반해 무 리하게 데리고 가지 않았다면 결코 찾아가는 일이 없었으리라고 생각되는 문화적 전도지로 이주시킨 것이다. 이처럼 이방인 사이에 살게 된 시리아 문명의 디아스포라가 주위의 이방 인에게 문화적 영향을 미치게 하는데 노력한 동기는 그 민족적 독자성을 유지하려는 관심에서였다. 그런데 유대인을 비롯한 그 밖의 유민의 역사에서는 이 같은 역공이 그 반대로 고립주의 형태를 취하여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박해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고립주의는 반응을 야기시키는 작용과, 별개의 면에서 움직이는 반작용이 다른 한 종류를 형성한다. 이 고립주의 정책이 가장 단순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그 거주지가 우연히 자연의 요새가 되어 있는 사회에 의해 이 정책이 실행되는 경우이다. 섬나라에 사는 일본인 사회는 산업 혁명 이전의 서유럽 사회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 포르투갈인 침입자에 대해 그처럼 응전했고, 또 거의 같은 무렵에 산간의 요새를 지키던 아비시니아 인이 같은 침략자에 대해 같은 응전을 해서 성공한 예가 있다. 티벳 고원 역시 절멸한 인도 문명사회의 화석인 탄트라 대승 불교를 위해 거의 완전히 외부로부터 차단된 요새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런 지리적 요인의 도움을 받은 물리적 고립주의는 역사적 흥미면에서 도저히 디아스포라의 생존을 위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고립주의와 비할 바 못된다. 디아스포라는 주위의 이민족이 그들을 도와주기는커녕 뜻대로 좌우하는 상태에 놓인 지리적 환경 속에서 이 위협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고립주의는 어디까지나 소극적인 방법이며, 그것이 다소나마 성공을 거둔 경우는 대개 가장 적극적인 다른 반응을 수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디아스포라의 생활에서 심리적 고립주의는 그것을 실행하는 인간이 경제면에서도 그들을 위해 남겨진 약간의 경제적 기회를 이용하는 특별한 재능을 발달시키지 않으면 실행 불가능할 것이다. 기분 나쁘게 생각할 정도의 경제적 특수화 재능과, 전통적인 율법 세목을 엄격히 준수하는 두 가지야 말로 디아스포라가 견고한 국경이나 군사적 용감성을 대신하여 인위적 대용 물로 취한 주요한 방책이었다 외국인 세력의 침입으로 인하여 큰 타격을 받고 디아스포라처럼 절망적인 궁지로 몰린 사회에서는 문화적인 면에서의 역습으로 그 방책이 채용되었다. 오스만 치하의 그리스정교 라이예 층과 무굴 치하의 힌두교 라이예는 함께 칼로 정복한 지배자에 대해 펜으로 반격하여 형세를 전복하는 데 성공했다. 인도 및 그리스정교 세계의 이슬람교도 정복자는 그들이 과거에 거둔 군사적 승리에의 환영 때문에 눈이 어두워 그들의 왕국이 분할되고 프랑크 인의 손으로 돌아간 역사 다음 단계의 현실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라이예는 이윽고 서유럽 사회가 승리를 얻으리라 예측하고 새로운 사태에 자기를 적응시킨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온 힘의 도전에 대한 비폭력적 응전은 모두 고등 종교를 창조한다는 더없이 평화적인 동시에 더없이 적극적인 응전에 비하면 물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헬라스 문명사회가 동시대의 동방 제문명에 대해 가한 압력은 이렇게 하여 그 응답으로서 키벨레 숭배•이시스 숭배•미 트라교•그리스도교 대승 불교를 출현케 했다. 또 바빌론 문명사회의 시리아 문명사회에 대한 군사적 압력은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를 출현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종교적 응전은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으로부터 받은 도전에 응하는 여러 가지 응전의 방법을 조사하는 우리가 당면한 연구 범위를 초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두 문명의 만남이 고등 종교의 출현을 촉구함과 아울러 이 새로운 배우가 등장함으로써 다른 배역과 다른 줄거리로 연출되는 새로운 극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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