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문명의 만남의 결과. 실패로 끝난 공격의 여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동시대 문명과의 만남의 결과
동시대 문명과의 만남의 결과는 서로 만난 문명 쌍방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잘 되었을 경우, 예컨대 성장기 문명이 지속적으로 공격을 잘 격퇴하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그 전형적인 예는 아케메네스 제국이 가한 공격을 격퇴한 헬라스 사회가 받은 영향이다. 이 군사적 승리로 최초에 나타난 사회적 결과는 헬라스 문명에 자극을 주어 헬라스 문명이 그 자극에 응하여 모든 활동 분야에서 일시에 개화를 본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후 50년도 되기 전에 똑같은 만남의 정치적 결과가 닥쳤다. 헬라스가 우선 그 자극을 회피하는데 실패했고, 이어 회복함에 실패하니 그 재난은 최고조에 달했다. 살라미스 해전 이후에 겪은 헬라스의 정치적 재난의 원인은, 살라미스 해전 이후 문화 융성의 원인과 같은 것인데, 그것은 아테네의 갑작스럽고 눈부신 대두였다. 이 '연구'의 다른 부분에서 말했듯이 페르시아 전쟁 이전 시대의 헬라스는 각 도시 국가가 경제적으로 자립 단위를 이룩하고 있던 그때까지의 경제 체 제를 특수화와 상호 의존을 방침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 체제로 바꿈으로써 경제 혁명을 일으켰고, 이제 더 이상 확대 불가능한 국토에 수적으로 증가 일로를 걷는 주민들을 양육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경제혁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테네였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 체제는 같은 차원의 정치 체제 테두리 안에서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유지해 나갈 수가 없다. 이리하여 기원전 5세기말 이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경제 체제에 걸맞은 정치적 통일을 실현하는 일이 헬라스 문명 세계에 가장 임박한 사회적 필요로 등장했는데, 그 해결은 솔론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테네가 아니라, 킬론과 클레오메네스의 스파르타에 의해 발견될 것 같은 형세였다. 불행하게도 아시아의 헬라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헬라스까지 아케메네스 왕조의 지배 밑에 두려고 기도한 다리우스의 운명적인 결의에 의해 헬라스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스파르타는 주인공의 지위를 양보했다. 그 결과 통일에 의한 구제를 필요로 했던 헬라스는 세력이 거의 맞먹는 경쟁자인 두 구제자의 출현으로 괴로워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아테네 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며, 또 거기서 파생된 여러 가지 재난이었다. 헬라스 문명 세계의 후계자인 그리스정교 사회 역시 그 발생기에 아랍 칼리프국의 형태로 재건된 시리아 문명사회에게서 얻은 더한층 놀라운 승리 뒤에 그런 정치적 대립의 재난에 휩싸였다. 아랍인이 콘스탄티노플의 정치적 명령을 기도한 뒤에 그리스정교 사회는 아나톨리아군과 아르메니아군이 패권을 다퉈 내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었고, 잘못하다가는 자멸할 단계에 있었다. 그것을 무사히 수습한 것이 동로마 황제인 레오 3세와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5세의 뛰어난 정치적 수완이었고, 대립되는 양 군단이 단일의 동로마 제국과 합체하여 불화를 해소하도록 설득했다. 동로마 제국은 죽어 가는 로마의 부활이라고 선전하고 있었으므로, 그들 의 충성심은 뿌리칠 수 없는 매력으로 인해 꽉 잡힌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망령을 부활시켜 난국을 수습하면, 반드시 그 응보를 받아야만 한다.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나약한 그리스정교 사회에 절대 독제재 정권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함으로써 시리아 인 레오 시루스는 이 사회의 정치적 발전을 불행하게 하였고 결국 치명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 다음으로 실패로 끝난 공격이 승리를 얻은 응전자가 아니라, 격퇴된 공격 자의 역사에 미치는 여파의 예를 조사해 보면, 공격자가 그 후 만나는 도전 은 한층 더 심해짐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히타이트 민족은 기원전 14~13세기에 실패로 끝난 아시아의 이집트령을 정복하려는 기도에 정력을 소진하여 완전히 약화되었고, 그 후 미노스 문명 멸망에 이은 민족 이동에 휩쓸려 타우루스 산맥에 있는 몇 개의 화석적 소사회 형태로 남는 데 그쳤다. 시칠리아 섬에 있는 헬라스인의 경쟁 상대인 페니키아 인과 에트루리아 인에 대한 공격이 실패로 끝난 여파는 어느 정도 나은 편이어서,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무능해졌지만, 예술적 및 학문적 활동은 손상되지 않았다.
성공적인 공격의 여파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우리는 앞의 '연구' 가운데서 동시대 문명이 만났을 때, 공격을 가한 문명의 압력이 공격당한 쪽의 문명사회체에 자신의 문화적 영향을 침투시키는 데 성공하는 경우에는 만난 문명 양쪽이 모두 이미 해체기에 들어가 있음을 보았다. 그런데 해체기의 징표 중 하나는 창조력을 잃어 사회체가 분열되고 단순한 지배자가 되어 버린 소수자와, 이제 단순한 지배자로 영락한 그전 지도자로부터 정신적으로 이반 하는 프롤레타리아 등 둘로 나뉨을 이야기했다. 인접 문명의 사회체 속에 문화적 영향을 침투시키는 데 성공한 문명의 사 회체 내부에 이미 사회적 분열은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반드시 곤란한 결과를 초래하면서 또 종종 저절로 얻어지는 성공의 가장 현저한 사 회적 증상은 내적 프롤레타리아의 이반이 제기하는 문제의 심각화 하겠다 프롤레타리아는, 가령 그것이 순수한 국산품이라도 본질적으로 취급하기 힘든 사회적 요소이다. 하물며 외래자를 받아들여 그 수적 세력이 증가하고 그 문화형이 다양화된다면 더욱더 취급하기 어렵다. 역사는 외래적 프롤레타리아의 수가 증가함으로써 야기되는 문제의 복잡화를 원하지 않았던 제국의 현저한 예를 몇 가지 제공한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신중을 기했다. 그의 군대에게 로마의 영토를 유프라테스 강 너머까지 확대하는 기도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제국 역시 마찬가지로 18세기 중엽과 그 후 제1차 세 계 대전의 전반에, 즉 독일군이 연전연승의 기세를 올리던 기간 중에 영토를 동남 방향으로 확대하여, 그렇지 않아도 이미 잡다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국민 내부의 슬라브적 요소 수를 늘리는 일을 싫어했다. 미국도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즉 1921년과 1924년의 입 법 조치로 해외 이민 수를 과감하게 삭감함으로써 같은 목적을 달성했다. 19세기의 미국 정부는 유대인 소설가 이스라엘 장윌이 '도가니'라는 이름을 붙인 낙천적인 원칙에 충실했다. 즉 모든 이민은, 적어도 유럽의 이민자는 곧 미국의 참다운 애국자로 바꿀 수 있다.
침략에 성공한 문명이 지불해야 할 사회적 대가
아울러 미국의 광대한 국토는 산업 인구가 부족하므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오는 자는 모두 다 받아들였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후 좀 더 어둡게 보는 방법이 힘을 얻게 되자 '도가니'는 이미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이처럼 외국인 프롤레타리아의 육체를 배격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과연 외국인 프롤 레타리아의 사상을 퇴출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은 물론 별개의 문제이고,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침략에 성공한 문명이 지불해야 할 사회적 대가는, 희생자가 된 피침략자의 이질적인 문화가 침략한 문명사회의 내적 프롤레타리아의 생활 속에 파고들어 그로 말미암아 이미 이반 된 내적 프롤레타리아와 지배적 소수자 사이에 생긴 정신적 간격이 한층 더 커지는 것이다. 로마의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는 2세기 초에 쓴 시에서 시리아의 오론테스강이 티베르 강에 흘러들고 있다고 전한다. 전 세계에 그 영향을 미친 근대 서유럽의 생각에는 단순히 오론테스 강과 같은 작은 강뿐이 아니라 갠지스강이나 양쯔강처럼 큰 강이 맞은편 대륙 끝 또는 바다 건너 템스 강이 허드슨 강으로 흘러들어 가고, 한편 도나우강은 그 흐름의 방향을 거꾸로 해서, 서유럽 문명에 전향시킨 루마니아 인이나 세르비아인, 불가리아인, 헬라스인의 문화적 충적토를 상류의 비인에 있는 터져나갈 듯한 '도가니' 속에 쌓아 올렸다. 성공한 공격이 공격받은 문명의 사회체에 미치는 영향은 더 복잡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해로운 것이다. 한편 우리는 본래의 사회체 속에서는 무해하거나 유익했던 문화 요소가 그것이 침투한 이질적인 사회체 속에서는 반 대로 파괴적인 영향을 일으킨다는 사실, 즉 '한 사람에게는 약이 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속담에 의해 요약된 법칙이 존재함을 발견한다. 한편 우리는 어느 하나의 고립된 문화 요소가, 공격받은 사회 생 활 속에 침입하는 일에 성공하면 그에 이끌려 같은 원천에서 나온 다른 요소가 침입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한다. 국외로 흘러나가 이질적인 사회적 환경 속에 침입하는 문화 요소의 파괴 적인 작용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몇 가지 예를 보았다. 이를테면 서유럽 문명 세계 특유의 정치 제도는 여러 비서유럽 사회에 비극을 낳게 하였다. 서유럽 정치사상의 본질적 특징은 지리적 근접이라는 물리적 우연성을 정치적 결합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