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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정을 하는 방향으로의 진보 기술

by 공부하는 샤샤 2026. 6. 16.

자기 결정을 하는 방향으로의 진보 기술. 자기 결정 방향을 발달의 역사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자기 결정을 하는 방향으로의 진보 기술
자기 결정을 하는 방향으로의 진보 기술

 

발달의 역사, 지리적 팽창의 역사와 문명의 성장

발달의 역사는 지리적 팽창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문명의 성장 기준을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점진적 단순화의 법칙이 기술의 진보를 지배한다는 원칙을 보여주었다. 정성껏 만들어진 '영구 도로'위를 달리는 무겁고 몸집이 큰 증기 기관차 대신에 기차와 같은 속도로, 더구나 보행자와 거의 다름없는 행동의 자유를 갖고 도로를 뛰어다닐 수 있는 아담하고 취급하기 쉬운 내연 기관차가 출현했다. 유선 전신 대신 무선 전신이 나타났고, 중국과 이집트의 아주 복잡한 문자 체계 대신 정연하고 편리한 라틴 알파벳이 출현했다. 언어 그 자체가 단순화의 경향을 나타내면서, 인도•유럽족에 속한 여러 언어의 역사를 비교해 보면 명백하듯이 굴절되는 껄끄러운 변화형을 버리고, 그 대신 보조적인 말을 섞어 부드럽게 이어게 되었다. 기록이 남아 있는 이 어족의 최고의 표본인 산스크리트 어는 놀라울 만큼 풍부한 어미변화를 나타냄과 동시에 놀랄 만큼 적은 접사를 갖는다. 이에 반해 또 한쪽 극단에 있는 근대 영어는 거의 모든 굴절을 벗어나고, 그 대신 전치사와 조동사를 발달시켜 빈자리를 메웠다. 고전 그리스어는 능숙한 변화 어형 표현식과, 위치•방향•움직임의 능숙한 표현식이라는 이 두 극단의 중간 항에 해당된다. 그러면 고대 서유럽 세계의 복장은 어떠했는가?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의 복잡한 양식에서 오늘날의 산뜻한 양식으로 단순화된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 대신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은 훨씬 단순한 기하학적 표현을 사용하여 더 넓은 범위의 천체 운행에 관해 시종일관된 설명을 한다. '단순화'라는 말은 이들 변화를 표현함에 있어 정확하거나, 적절한 말은 아닌지도 모른다. 단순화란 소극적인 말로 생략과 제거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든 각 예에 있어 실제로 일어난 일은 실용적 능률, 미적 만족, 또는 지적 파악의 감퇴가 아니라 증진이다. 결과는 손실이 아니라 이득이다. 그리고 이 이득이 단순화의 과정에서 생기는 것은 단순화의 과정이 그때까지 보다 물질적인 매체 속에 갇혀 있던 힘을 해방시켜 보다 영묘한 매체 속에서 자유롭게 더 큰 기쁨과 큰 효과를 추구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장치의 단순화를 뜻할 뿐 아니라, 동시에 그 결과로써 생기는 저차원의 존재나 활동 영역에서 고차원 영역으로의 에너지 전환 내 지 무게중심의 이동을 뜻한다. 단순화 부르기보다 질적인 풍성화라고 부르는 편이 이 과정의 성질을 보다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발전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이런 발전에 대해 현대의 한 인류학자가 상상력에 넘치는 멋진 필치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땅 위에서 멀어져 가고 있고 접촉을 벗어나고 있으며, 우리의 발 자취는 차차 희미해져 간다. 부싯돌은 영구히 존속하고, 구리는 한 문명이 계속되는 동안, 쇠는 수 세대를, 강철은 인간의 한 수명 동안 지탱된다. 현재의 '이동 시대가 끝났을 때 도대체 누가 런던-베이징 간의 특급 항공편의 노선을 지도 위에 나타낼 수 있을까? 또는 도대체 누가 오늘날 라디오를 통하여 방송되며 수신되는 통신로를 알아맞힐 수 있을까? 그런데 아득한 옛 날에 소멸한 이케니 족의 아주 작은 왕국의 국경은 아직도 사라진 왕국을 수호하듯이 간척된 늪지에서 벌채된 삼림에 걸쳐 동잉글랜드 남부 경계선을 가로질러 뻗어 있다."위에서 든 몇 개의 예로 보아, 그러면 우리가 구하고 있는 성장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적 환경과 자연적 환경 모두를 포함해 외적 환경의 정복이란 사실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기준은 오히려 도전과 응전이 충돌하는 두 영역의 경계점 중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차차로 중점이 바뀌어 활동 무대가 이동되는 점에 따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뒤의 영역에서 도전은 외부에서 육박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그것을 이기는 응전은 외적 장해를 극복한다든지 외적을 정복한다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자기 표면 혹은 자기 결정이란 형태로 나타난다. 개개의 인간 또는 개개의 사회가 계속 출현하는 도전에 대해 계속 응전하는 것을 보고, 과연 이 특정된 도전에 대하여 응전의 연속을 성장의 실현이라 볼 수 있느냐의 여부를 문제로 삼을 때, 그 연속이 진행함에 따라 활동이 그 두 영역 중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이행하느냐 안 하느냐를 관찰함으로 써 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일이 진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 로지 외면적 영역을 기준으로 하여 성장 과정을 기술하려고 노력하는 역사적 저서들을 보면 극히 명료해진다. 제각기 천재의 작품으로서 이 필법으로 씌어진 두 저술을 예로 들자면, 그것은 에드 드랭의「통로가 어떻게 사회유형을 만들어 내는가」와 H.G. 웰스의 「세계문화사 대계」이다. 드몰랭은 서문 속에서 환경설을 단호하고 간결한 표현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구 표면에 무한히 다양한 민족이 생존하고 있다. 이 다양성을 낳게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종족의 다양성의 첫째이자 결정적인 원인은 각 민족이 더듬었던 통로이다. 종족과 사회 유형의 쌍방을 만들어 내는 것은 통로이다." 이 선동적인 선언이 노리는 것처럼 우리가 그것에 자극받아 저자의 주장 이 상술되어 있는 본문을 읽어 보면 미개 사회의 예증을 인용하는 부분에서 는 그의 주장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의 성격은 외적 환경에서 오는 도전에 대한 그 응전을 보면 완전히 설명된다. 물론 말할 나위 없이 이것은 성장에 대한 설명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회는 현재 정지하고 있으니까. 발육 정지된 문명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드몰랭은 마찬가지로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그의 공식을 가부장제 촌락 공동체에 적용하게 되자, 독자는 차차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성장, 외적 환경에서 주어지는 도전에 대한 응전

카르타고와 베네치아 대목에서 저자는 카르타고의 이탈리아 식민지에서, 악조건 지역에다 소금 무역 을 한 베네치아를 빼놓았는데 거기에 확실히 뭔가 빠뜨리고 있다. 더구나 그 빠뜨리고 본 것이 무엇인가를 아마 말할 수 없는 모양이지, 하는 식으로 느껴진다. 저자가 피타고라스 철학을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 발끝을 횡단하여 행해진 수면 육로 무역에 의거하여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그럭저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제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고원의 통로-알바니아 형과 그리스 형'이라는 타이틀의 장에서는 독자는 마침내 도중에서 포기하고 만다. 알바니아의 야만 사회와 헬라스 문명을 일괄해서 다루는 것은 안될 일이다. 이들 각 국가의 대표자가 그 옛날 우연히 같은 지역을 경유하여 각자 목적지에 당도한 일 때문에 그렇게 결론 내는 것은 무리이다. 또 우리가 헬레니즘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위대한 인간의 모험을 발칸고원에서 함께 했던 우발적인 부산물로 만들어 버리다니! 자기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결정짓는 이 불운한 장에 있어서 이 서적에 대한 논의는 억지로 가져다 맞추는 견강부회에 빠져 스스로 파탄한다. 문명이라는 것도 헬라스 문명 정도에 달하면 그 성장을 외적 환경에서 주어지는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는 것만을 기준으로 다루어 기술하려는 시도는 분명히 넌센스이다. 웰스도 역시 원시적인 사항이 아니라 완전히 발전된 사항을 다루는 단계에 이르면 터치의 확실성을 잃는 듯이 보인다. 상상력을 구사하여 태고의 지질 시대에 일어난 극적인 사건을 재구성하는 일에 대해서 그는 유감없이 그 본래의 특성을 발휘한다. '이 작은 수형 동물, 이 포유류의 선조들이 살아남고 너무 커진 파충류가 멸망하는 경과에 대해 그가 서술한 이야기는 성서의 다윗과 골리앗의 영웅 이야기에 거의 뒤지지 않는다. 이 수형 동물이 구석기시대의 수렵자나 유라시아의 유목민이 될 때에도 역시 웰스는 드물랑 과 마찬가지로 우리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서유럽 사회의 역 사에 들어가 그 수형 동물은 비길 데 없이 문명이 풍성해지는 윌리엄 글래드 스턴을 평가하는 단계에 들어서면서 그는 슬픔에 부닥친다. 그는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차차 중점을 거대화, 즉 대우주에서 소형 밀도화 즉, 서우주로 전환시키지 못한 그 점에서 실패했다. 그리하여 이런 검증의 실패로 인해 「세계문화사 대계」라는 훌륭한 지적 업적의 한계가 나타난다. 웰스의 실패는 똑같은 문제를 해결한 셰익스피어의 성공에 의하여 드러난다. 위대한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차차 내용이 풍성 해지는 순서대로 그 주요도가 정해지고 또 극작가의 수법이 인물의 행동을 통하여 성격을 분명히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셰익스피어가 관 객의 인물 판단 기준이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올라감에 따라 각 주인공의 행동 영역을 끊임없이 이동시켜 차차 소우주에 많은 무대를 할애하고 대우주를 점차로 멀리 배경 쪽으로 밀어내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헨리 5 세」「맥베스」「햄릿」의 순서로 더듬어 가면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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