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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가진 구세주

by 공부하는 샤샤 2026. 6. 21.

타임머신을 가진 구세주. 과학과 관련된 타임머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타임머신을 가진 구세주
타임머신을 가진 구세주

타임머신을 가진 구세주, 자동차의 발명

타임머신을 가진 구세주 H.G. 웰스의 초기 공상 과학 소설의 하나에 '타임머신'이라는 것이 있다. 시간을 제4차원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이미 그 무렵 (1895년경) 일반인에게 보급되고 있었다. 웰스의 소설 주인공은 시간•공간 속을 앞뒤로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는 일종의 자동차(자동차도 또한 당시의 신발명이었다)를 발명한다. 그리고 자기가 이 자동차를 타고 세계사의 현재로부터 멀리 떨어진 단계를 차례로 방문하는 것인데, 최후로 방문한 단계를 제외한 다른 모든 단계에서 무사히 돌아와 그 보고 들은 바를 이야기한다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웰스의 동화는 사회의 현상이나 전도는 도리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이상화된 과거로 복귀하거나 이상화된 미래로 뛰어듦으로써 세상을 구하려는 복고주의자 또는 미래주의자 구세주들의 기발한 행위를 비유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들 구세주들의 노력에 대해 구구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미 복고주의와 미래주의가 다 헛된 노력이며,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분석하고 명백히 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들의 '타임머신'은(그것은 웰스의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단 한 사람의 탐험자가 타는 차가 아니라 그 사회의 인간 전체를 태우는 '옴니버스' (이 말의 통속적인 용법보다도 좀 더 엄밀한 뜻에서의)로 생각되는) 반드시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실패로 업을 망친 자칭 구세주는 타임머신을 집어던지고 칼에 의지하게 되며, 그 결과 앞서 말한 노골적인 '칼을 가진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는 좌절의 운명에 빠진다. 이 이상주의에서 폭력주의자로의 비극적 변형은 복고주의적 구세주에게도, 미래주의적 구세주에게도 일어난다.

 

미래주의로 빠지는 복고주의의 상례

18세기의 서유럽 세계에서 복고주의의 기본적 신조가 루소의「사회 계약론」첫머리에 있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되 어디에서나 쇠사슬로 묶여 있다는 한 문장 속에 압축되어 표현되었다. 루소의 가장 유명한 제자는 일반적으로 1793~94년의 프랑스의 '공포 시대'를 자아낸 장본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로베스피에르였다. 19세기에 원시적 이교도인 '북유럽' 인종을 이상화한 죄 없는 색다른 학자들도 현대의 나치스 공포 정치에 대해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미 앞에서 말한 대로 온화한 복고 운동의 대표자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동생인 가이우스의 선구자가 되어 100년을 끈 혁명을 끌어들인 것처럼, 스스로의 의도에 반해 공격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후계 자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경우가 있다. 복고주의와 미래주의의 차이는 어제와 오늘의 차이 정도로 명백한 일처럼 생각될지 모르나 어떤 특정한 운동, 또는 어떤 특정된 구세주를 어느 부류에 넣으면 좋을지 결정짓는 일이 곤란한 경우가 가끔 있다. 왜냐하면 역사에 '원상태로!'(이전 상태로의 복귀)가 있을 수 있다는 망상을 추구해 가는 동 안에, 본래 의도에 반해 미래주의로 빠지는 일이 복고주의의 상례이기 때문이다. 원래 역사에 '원상태로!'가 있을 리 없다. 일단 그곳을 통과하여 앞으로 갔다 다시 한번 되돌아왔다는 그 일반으로도 복귀한 장소(복귀했다고 가정하고)는 원래 장소와 다른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 기술과 학문

루소의 제자들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이상화하여 '고귀한 야만인'을 예찬하고, '기술과 학문'을 개탄함으로써 혁명을 촉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의식적인 미래 주의자였던 혁명가(가령 '진보'설에서 영감을 얻은 콩도르세처럼)쪽이 확실히 좀 더 사물을 보는 관찰력이 있었다고 하겠다. 복고주의를 표방하는 운 동의 결말은 항상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복고 운동 전반에 있어 복고적인 요소는 본질적으로 미래주의적인 알약을 싼 당의에 불과하다 -그것이 '열광적인 사상가'에 의한 결백한 마음에서 입혀진 것이건, 선전의 명수에 의해 교묘하게 입혀진 것이건 상관없이 그러하다. 하여간 달콤한 외피로 싼 약은 삼키기 쉽다. 불확실한 미래는 미지의 일에서 오는 여러 가지 불안을 느끼게 하나, 과거는 해체하는 사회가 마치 황야처럼 황량한 현재 속에 빠져 들기 전에 살았던, 오랫동안 잃은 안락한 나의 집으로서 상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중간 시기의 어떤 종류의 영국 사회주의 창도자는 복고적인 중세 숭배자로서 등장했다. 그리고 그들 의 계획을 길드 사회주의라 이름 붙이고, 중세의 길드 조직과 비슷한 것을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령 그 계획이 실현되었다고 한다면, 결과는 13세기경의 서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여행자들의 표정을 어처구니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복고주의자와 미래주의자의 구세주는 칼을 가진 구세주와 마찬가지로 약속대로의 훌륭한 것을 주기로 한 일에 실패한다. 세계 국가 속에 구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세적이고 혁명적인 유토피아 속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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