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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리듬과 해체의 리듬

by 공부하는 샤샤 2026. 6. 24.

성장의 리듬과 해체의 리듬. 성장기 사회와 해체기 사회에서의 성장의 리듬과 해체의 리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성장의 리듬과 해체의 리듬
성장의 리듬과 해체의 리듬

성장기 사회와 해체기 사회의 유사점

성장기 사회와 해체기 사회에서의 창조적 인물이 각각 맡은 역할의 유사점(동시에 그것은 피하기 어려운 차이점을 포함)을 조사하여 찾아냈다. 이번에는 주제의 다른 부분에서, 같은 조사방침에 따라 성장의 리듬과 해체의 리듬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사이에 인정되는 유사점을 찾아내기로 한다. 어느 쪽이든 기본적 방식은 동일하며, 이 연구를 통하여 응전의 되풀이 형식을 취한다. 성장기 문명에 있어서 하나의 도전은 그것을 훌륭하게 극복하는 응전에 의하여 극복되고 그 응전이 또 다른 도전을 낳는데, 그 도전 역시 새로운 응전에 의하여 극복된다. 이 성장 과정은 그 문명이 대항할 수 없는 도전이 나타날 때까 지(성장의 정지를 의미) 우리가 쇠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끝없이 지속된다. 쇠퇴기에 들어가는 동시에 그것에 대항하는 리듬이 시작된다. 막아내지 못하여도 도전은 여전히 모습을 계속 나타낸다. 그것에 대항하기 위하여 두 번째의 필사적인 노력이 이루어진다. 만약에 그것이 성공한다면, 물론 다시금 성장이 시작된다. 그러나 부분적•일시적인 성공 후에 이 응전 역시 실패로 끝난다고 가정하자. 그렇게 되면 다시 정세 악화가 시작되며 다분히, 잠시 사이를 두고 또 새로운 응전의 시도가 이루어진다. 그것이 일시적 또는 부분적으로 여전히 가차 없는 도전에 대항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응전 역시 결국 실패한다. 그리고 이 실패가 마지막 것이 되어 그 사회의 파멸을 초래하는 적도 있으나, 그렇게 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 리듬을 군사 용어로 말한다면 패주-회복-패주-회복-패주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의 첫 부분에서 사용해 온 용어로 되돌아가서 말한다면, 쇠퇴 후에 계속되는 동란 시대가 패주하고 세계 국가의 수립이 회복되며, 또한 세계 국가의 붕괴 후에는 계속되는 공백 기간이 패주에 해당됨을 곧 알 수 있다. 그러나 세계 국가의 하나, 즉 헬라스 사회의 세계 국가 역사에서는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한 후에 로마가 다시금 무정부 상태로 빠지고,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시대로 회복되고 있다. 어느 특정한 세계 국가의 역사에 한 번 이상의 정세 악화와 회복이 일어나 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와 같은 정세 악화와 회복의 횟수는, 조사 대상에 맞추는 렌즈의 배율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테면 저 '네 황제(가 르바•오토•위텔리우스·베스파시아누스)의 해'라 불리는 69년의 짧은 기간이지만, 놀라운 정세 악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두드러진 현상만을 문제 삼고 있다. 그리고 동란 시대의 도중에 부분적 회복의 시기가 나타난 적도 있다. 만약에 동란 시대 중에 부분적인 회복의 시기가 생기고, 세계 국가의 존속 기간 중에 부분적으로 정세 악화가 생긴다고 한다면, 패주-회복-패주-회복-패주-회복-패주······라는 공식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을 우리의 패주-회복 리듬의 3박자 반이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이 세 개 반이라는 수에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특정 한 해체의 사례가 3박자 반, 4박자 반, 또는 5박자 반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나, 그래도 본질적인 점에서 해체 과정의 일반적인 리듬에 합치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3박자 반이라는 것이 숱한 해체기 사회의 역사에 맞는 형인 것 같다.

 

해체하는 사회의 역사, 헬라스 사회의 쇠퇴기

그 예증으로서 몇 개의 해체하는 사회의 역사에 관하여 살펴보자 헬라스 사회가 쇠퇴기에 들어간 연대는 정확히 기원전 431년, 그리고 아우구스투스에 의하여 세계 국가가 수립된 연대는 그보다 400년 뒤인 기원전 30년경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400년 동안의 어디에서 회복-정세 악화의 리듬을 볼 수 있을까? 틀림없이 볼 수 있다. 그 징후의 하나는 둘 다 기원전 4세기 후반에 시라쿠사의 티몰레온 (콜린트의)에 의해 전파되었고, 또한 더 광범위하게 알렉산더가 설교한 '호모노이아(조화의 이상)', 즉 전 그리스가 동조한 사회적 복음이다. 제2 징후는 철학자 제논과 에피크로스, 그리고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퍼진 '코스모폴리스', 즉 세계 국가에 관한 사상이다. 세 번째는 새로운 국가 체제를 확립하려는 시도(셀레우코스 제국과 아키이아 동맹, 아이톨리아 동맹, 로마 공화정)가 그것이며,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도시 국가라는 주권을 초월하려는 시도였다. 이 밖에도 몇몇 징후를 들 수 있지만, 우리가 추측한 '회복'이 가공적인 것이 아님을 제시하고, 또한 그 대체적인 연대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그 회복 경향은 실패로 끝났는데, 그 주요 원인은 새로이 확대된 정치 단위가 개개도시 국가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그 상호 관계에 있어서는 아테네-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시작하여 헬라스 사회의 쇠퇴를 초래한 기원전 5세기의 도시 국가와 마찬가지로 옹졸하고 비협조 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 정세 악화 시기, 또는 '결국은 같은 것이지만' 최초 회복의 실패 시기는 기원전 218년의 한니발 전쟁 개시 때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앞서 로마 제국의 역사 과정에 100에 걸친 정세 악화의 시기가 있었으며 그 후에 회복의 시기가 온 데 대하여 말하였으므로, 그것을 합하면 꼭 3박자 반이 된다.

 

주욱 사회의 해체기, 불행한 충동의 쇠퇴

다음 중국 사회의 해체기에 관해 살펴보면, 기원전 634년 진• 주 등 두 나라의 불행한 충돌이 쇠퇴가 시작된 시기이며, 기원전 221년에 진나라가 제나라를 무너뜨린 시기가 중국 사회의 '세계 평화'가 확립된 시기에 해당된다. 만약에 이 두 연대가 중국사회 동란 시대의 시초와 종말의 연대 라고 한다면, 그 중간에 회복-정세 악화의 박자의 흔적을 볼 수 있을까? 답은 긍정적이다. 중국 사회의 동란 시대 중 공자 시대인 기원전 546년, 결국 유산으로 끝난 군비 축소 회의에서 시작된 회복의 시기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 사회의 세계국가 역사를 살펴보면, 기원 1세기 초의 전한 과 후한 중간의 공백 기간에 한 차례의 현저한 정세 악화와 회복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도 역시 중국 사회의 연대는 모두 이에 대응하는 헬라스 사회의 연대에 비하여 규칙적으로 약 200년씩 앞당겨져 있기는 하지만 역시 3박자 반의 리듬을 볼 수 있다. 수메르 사회의 역사에서도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메르 사회의 동란 시대 중에 한 차례 회복-패주의 리듬을 분명히 볼 수 있는 한 편 수메르 사회의 세계 국가 생존 기간 도중에 한 차례 매우 현저한, 앞서 말한 것과는 반대의 패주 -회복의 리듬 구획이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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