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상위권으로서의 교회 새로운 분류. 문명의 역사의 주역이 교회라는 이론으로 사회의 상위권으로서의 문명 종교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문명이 종교의 역사에 준 효과
지금까지 우리는 문명이 역사의 주역이며, 교회의 역할은 문명의 장애든 조력자든 종속적이었다는 가정 위에서 이론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혹시 교회가 주역이고, 문명의 역사는 문명 자체의 운명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 종교의 역사에 준 효과라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고찰하고 해설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생각은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역설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요컨대 성서의 총서 속에서 채용되고 있는 역사의 취급법이다. 이 견지에 서면, 우리는 문명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지금까지의 가정을 수정해야 한다. 제2기 문명이 출현한 것은 자기 공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나 자기와 같은 종류의 제3기 문명을 낳기 위해서가 아니고, 완전히 자란 고등 종교가 태어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고등 종교가 발생하는 것은 제2기 문명의 쇠퇴와 해체의 결과이므로, 제2기 문명의 말기야말로 문명이 종교의 탄생을 위해 존재했다는 그 의의를 발휘하는 시기이다. 같은 사고방식에 따라 초대 문명도 동일한 목적을 위해서 출현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후계자와 달리 초대 문명은 완전히 육성한 고등 종교를 낳게 할 수는 없었다. 초대 문명에서 내적 프롤레타리아의 초보적인 고등 종교는 끝내 개화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문명은 결국 그 내부에서 완전히 자라난 고등 종교가 제2기 문명을 낳음으로써 간접적으로 그 사명을 달성한 셈이 되며, 초대 문명이 낳은 초보적 종교는 제2기 문명이 만들어내는 고등 종교를 위한 인스피레이션의 일부가 되었다. 이같이 보면 잇달아 출현하는 초기 문명과 제2기 문명의 흥망은 이전에 다른 문제와의 관련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차를 앞으로 추진시키는 회전 운동의 일례라는 말이 된다.
문명이라는 차륜 회전의 하향 운동
그런데 왜 문명이라는 차륜 회전의 하향 운동이 종교라는 차를 전진시키는 수단이 되느냐 하는 것을 문제시한다면, 종교는 정신적 활동이며, 정신적 진보는 아이스킬로스가 '파테이 마토스'로 표현한 '법칙'을 따른다는 진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정신생활의 본질에 관한 직관적 법칙을 그리스도교에서 마치 그 자매 종교인 대승 불교 · 이슬람교 · 힌두교가 마침내 개화기의 절정에 달한 것과 같은 정신적 노력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탐무즈나 아티스 · 아도니스 · 오시리스의 수난이 그리스도 수난의 전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헬라스 문명의 쇠퇴로 야기된 정신적 고뇌 속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더 긴 이야기의 마지막 장이었다. 그리스도교의 뿌리는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인데,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는 한 시대 전에 일어난 다른 2개의 제2기 문명, 즉 바빌로니아와 시리아의 쇠퇴 결과 생긴 것이다. 유대교의 발상지인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은 시리아 문명 세계의 서로 싸우는 많은 지방 국가들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이 두 세속적 국가의 멸망과 그 모든 정치적 야망의 소멸이야말로 유대교를 탄생시켰으며, 기원전 6세기, 즉 아케메네스 제국이 수립되기 직전 시리아의 동란 시대의 최후 고난 시기에 만들어진 '고난 받는 종의 비가' 가운데 최고의 표현을 불러일으킨 체험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이야기의 시초는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근원인 유대교는 모세의 종교 속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대의 종교 예언서 이전의 단계는 세속적 파국, 즉 이스라엘 자신이 전승한 이스라엘인을 내적 프롤레타리아 속에 포함했던 이집트의 '신제국' 붕괴의 결과였다. 같은 설화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이집트에 수난받기 이전 수메르 문명의 해체기의 어느 시기에, 아브라함이 '유일한 참된 신'에게서 계시를 받아 그 계시에 인도되어 파멸의 운명에 있는 수메르 제국의 수도 우르에서 탈출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가 절정에 달한 정신적 진보의 제1단계는 설화에서 역사가들이 알고 있는 최초의 세계 국가 붕괴와 결부되어 있다. 이 같은 전망에서 보면 그리스도교는 잇달아 일어난 세속적 파국을 견디어 내고 단지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그러한 파국을 통해 축적된 자극을 얻는 정신적 진보의 접점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문명의 역사가 다양성과 반복성을 지닌데 반하여 종교의 역사는 단일성과 점진성을 가진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시간의 차원에서 볼 수 있는 양자의 차이는 공간의 차원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며, 20세기에 살아남은 그리스도교와 다른 세 가지 고등 종교 사이에는 동시대 문명 상호 간에 있는 것보다도 훨씬 밀접한 유사성이 존재한다. 이 유사점은 신을 스스로 희생하는 구세주로 보는 견해를 공유하는 그리스도교와 대승 불교 사이에서 특히 뚜렷이 드러난다. 이슬람교와 힌두교는 어떤가 하면, 이들 두 종교 역시 저마다 독특한 의의와 사명을 부여하는 신관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의 헌식적 신앙을 바치는 신의 인격성
이슬람교는 신의 유일성 파악이 매우 약해져 있는 그리스도교에 반하여 이 중요한 진리를 다시 강조했으며, 힌두교는 원시 불교의 철학 체계에서 인격의 존재가 분명히 부정되어 있는데 반하여 인간의 헌신적 신앙을 바치는 대상으로서 신의 인격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들 4개의 고등 종교는 동일한 테마의 네 가지 변주곡이라 하겠다. 그러나 만약 그대로라면 적어도 유대교에서 파생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교에서 지금까지 종교는 달라도 계시는 하나임을 인식한 인간은 극히 소수의 드문 정신의 소유자에 한하며, 보통 견해는 그 반대였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유대교 계통의 고등 종교는 저마다의 공식 견해에 있어 자기 쪽 창에서 스며드는 빛이 유일하고 완전한 빛이며 다른 자매 종교는 암흑 속은 아니더라도 모두 박명 속에 웅크리고 있다는 식으로 보고 있다. 각 종교 내부의 저마 다의 종파가 그 자매 종파에 대하여 또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이 상이한 교파가 서로의 공통점을 인식하고 상대편의 주장을 용인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불가지론자 (7 피체)에게 신을 모독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한심한 상태가 한없이 계속되느냐는 의문을 제출할 때, 우리는 이 문맥 속에서 '한없이'라는 말속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인류가 새로이 발견된 기술을 이 지구상의 생물을 절멸시키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 한 인류의 역사는 아직 유아기이며, 앞으로 몇십만 년간이나 더 계속될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망 위에 서 있으면, 현재의 종교적 할거주의 상태가 한없이 계속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각종 교회나 종교가 서로 적대시하고 싸우면 킬케니의 싸우는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양쪽이 다 쓰러지든가 아니면 통일된 인류가 종교적 통일 속에 구원을 발견하든가 어느 쪽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이긴 하지만 그 통일이 어떤 성질의 것이 되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하등 종교는 그 본래의 성질로 보아 지방적인 것이어서 부족 또는 지방 국가의 종교이다. 세계 국가의 성립과 함께 이들 종교의 존재 이유는 소멸되고 고등 종교 또는 그 이외의 각종 종교가 개척자 획득을 목적으로 경쟁하는 광 대한 지역이 출현한다. 따라서 종교는 개인의 선택이 된다. 이미 이 '연구' 속에서 여러 번이나 말했듯이 로마 제국 내부에서 결국 그리스도교의 손에 돌아간 수확물을 여러 종교들이 빼앗기 위해 결쟁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 또 단일 경쟁의 무대에서 여러 종교들 이 동시에 전도 활동을 벌인다면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유일한 종교가 승리자가 되느냐, 또는 중국 문명 세계나 인도 문명 세계의 경우처럼 서로 경쟁하는 종교가 공존하기로 타협하느냐의 어느 쪽이다. 이 두 가지 결말은 일견 마치 다른 것같이 보이지만, 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승리자가 될 종교는 보통 경쟁 상대의 주요한 특징 중의 어떤 것을 흡수함으로써 승리를 거두기 때문이다. 승리를 얻은 그리스도교의 판테온에서 마리아는 신의 위대한 어머니로의 변모라는 형태로 키벨레나 이시스의 모습으로 재현되어 있고, 또 싸우는 그리스도 속에 미트라와 솔인빅투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승리를 얻은 이슬람교의 판테온에서는 추방되었을 신이 숭상받는 알라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남몰래 숨어들었고, 또 금지되었을 우상 숭배가 메카에서 카바 신전의 창시자 자신에 의하여, 성별 된 흑석 10의 주물 숭배로서 개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