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제의 유용성, 교통수단. 세계국가의 존립 자체가 의존하고 있는 교통수단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세계 국가가 의존하는 교통수단
이번에는 세계 국가 개개의 구체적인 제도가 세계 국가의 은혜를 입는 사람들에게 주는 편의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들 제 도는 세계 국가 스스로가 계획적으로 만들고 유지해 가는 것인데, 이따금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역할 가운데에서 그 역사적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제도라는 말을 다소 넓고 일반화한 뜻으로 써서 다음과 같은 것, 즉 교통수단, 주둔 부대와 식민지, 지방 제도, 수도, 공용 언어와 공용 문자, 법률 제도, 역법, 도량형 및 화폐, 군대•관리 제도, 시민권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한다. 다음에 이들에 관하여 하나하나 검토해 가기로 하겠다. 교통수단을 맨 먼저 든 것은, 교통수단이야말로 세계 국가의 존립 자체가 의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 국가가 그 영토에 대하여 군사적•정치적 지배를 행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들 제국의 생명선에는 인공 도로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이 포함된다. 첫째로 강이나 바다나 초원이 제공하는 '자연의' 공로도 경찰의 힘에 의하여 치안이 유지되지 않는 한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수송 수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대다수의 세계 국가에서 수송 수단은 제국 우편 제도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우편 집배인은 대개 가 경찰관을 겸하고 있었다. 관영 우편 제도가 기원전 3000년의 수메르아 카드 제국 정부 기관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000년 후에 같은 지역에 존재한 아케메네스 제국에서 같은 제도가 더욱 고도의 조직과 능률을 갖추게 되었다. 제국의 교통 조직을 중앙 정부의 지방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용하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정책은 로마 제국과 아랍 칼리프국의 정책에서 재현되고 있다. '중국과 페루'의 세계 국가에서도 같은 제도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결코 뜻밖의 일은 아니다. 중국 문명 세계 국가의 혁명적 창설자였던 진나라의 시 황제는 그의 숙소로부터 사통팔달하는 도로를 건설하는 동시에 복잡한 조직을 가진 감찰 제도를 채택하였다. 잉카족도 역시 마찬가지로 도로에 의하여 그들의 정복을 확고한 것으로 만들었다. 쿠스코로부터 키토까지 직선거리로 1600킬로미터, 도로 길이는 그 1.5배가 되지만, 10일이면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세계 국가의 정부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도로는 분명 본래 의도되지 않았던 갖가지 목적에 이용될 수 있었다. 로마 제국 말기에 영내로 침입해 온 외적 프롤레타리아의 전투 단체는 로마 제국이 의도치 않은 바의 그 절호의 진격 수단을 제공받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렇게 급속도로 약탈 행위를 밀고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라리크보다 더 흥미 있는 인물이 도로상에 모습을 나타낸다. 아우구스투스가 피시디아에 대하여 '로마의 평 화'를 강요하였을 때, 그는 부지불식간에 성 바오로가 첫 번째 전도 여행으로 • 팜필리아에 상륙하여 피시디아의 안티오크키아와 이코늄•리스트라, 그리고 데르베 등으로 무사히 여행하도록 준비한 셈이 된다. 그리고 폼페이우스는 바다에서 해적을 소탕하였는데, 그 덕분에 바오로는 폭풍과 난파의 시련 이외에 사람이 가하는 위험을 당하지 않고 팔레스티나의 케사리아로부터 이탈리아의 푸테올리에 이르는 그의 중대한 마지막 항해를 할 수 있었다.
로마의 평화, 편리한 사회적 환경
'로마의 평화'는 바오로의 후계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편리한 사회적 환경이 되었다. 로마 제국 성립 후 2세기 후반에 리옹의 주교 성 이레나이우스는 헬라스 세계 전체에 퍼진 가톨릭 교회의 통일을 찬양하여, "교회는 이 복음과 신앙을 받아들여 전 세계에 분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 지붕 밑에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세심하게 이들 보물을 지키고 있다'라고 쓰고 있는데, 그곳은 곧 로마 제국의 편리한 교통에 대하여 은연중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200년 후에 그리스도쿄의 융성에 대하여 불만을 품은 이교도의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가 "다수의 고위 성직자들이 관영의 역마를 이용하여 그들의 이른바 "시노두스'(교회 회의)의 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다"라고 불평하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의 개관은 교통 조직이 처음에 의도되지 않았던 뜻밖의 이 용자에게 이용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점을 밝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경향을 하나의 역사적 법칙'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이 결론은 1952년에 이 연구'의 필자와 그 동시대 사람이 살고 있는 서유럽화 해가고 있는 세계의 장래에 대하여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제공한다. 1952년까지 약 4세기 반 동안 서유럽 인은 그들의 창의와 숙련을 인간이 살아서 도달할 수 있는 한 지구의 모든 표면이 차차 속도가 빨라지는 기술적 수단에 의하여 운영되는 교통 조직으로 결합되도록 하는 데 사용해 왔다. 근 대 서유럽의 선구적 항해자를 7 대양의 지배자로 만든, 역풍을 받고 항해할 수 있도록 의장된 목조의 캐러벨선과 갤리언선은 훨씬 큰 기계의 힘으로 추진되는 철선으로 바뀌었으며, 6두 역마차가 달리고 있었던 '진흙 길'은 자동차가 질주하는 쇄석재 포장도로와 콘크리트도로로 바뀌었다. 철도가 도로와 경쟁하고 항공기가 모든 육상 및 해상 수송 기관과 경쟁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인간의 몸을 물리적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없는 통신 방법이 전신•전화•라디오에 의한 무선 전송(청각적 및 시각적 전송)의 형태로 실현되어 실제로 실시하게 되었다. 모든 형태의 인간 교제를 위해 이토록 많은 지역이 이만큼 고도의 전파성을 갖게 된 것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이와 같은 발전은 이러한 놀라운 기술적 발명을 수행한 사회가 결국 정치 측면에서의 통일 운명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을 쓰고 있었던 당시에는 서유럽 세계의 정치적 전망은 아직 밝지 않았다. 관찰자로서 는 정치적 통일이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 실현될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생각되더라도 통일의 시기와 방법에 관해서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60 또는 70개의 자기 주권을 주장하는, 양보하지 않는 지방 국가로 분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원자 폭탄을 발명한 세계는 '일격의 타격'이라는 평범한 방법으로 정치적 통일을 강요당하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숱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 있어서도 역시 평화가 이처럼 단 하나의 살아남은 대국의 전횡적인 명령에 의하여 강요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물질적 황폐는 말할 것도 없고 도덕적•심리적•사회적•정치적 황폐의 형태로 지불되는, 힘에 의한 통일의 대가가 이제까지의 같은 종류의 경우에 비해 한층 더 값비싼 것임은 거의 확실한 일이다. 이와 동시에 정치적 통일이 자발적 협력이라는 별도의 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어떤 해결법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이 새로운 전 세계적 교통망은 의도치 않았던 수익자에 의해 이용당한다고 하는, 널리 알려진 역설적인 역할 가운데에서 그 역사적 사명을 발견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신을 가지고 예측할 수 있다. 이 경우 최대의 이익을 거두는 사람은 누구일까? 외적 프롤레타리아의 야 만족이라는 것은 우선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들 중에서 이미 아틸라에 비길 수 있는 새 야만인, 즉 히틀러 및 그와 같은 종류의 문명에의 반역자를 낸 바 있으며, 앞으로도 나타날지 모르지만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서유럽의 조직은 서유럽 세계 밖에 있는 진짜 야만인의 가련한 잔존을 두려워할 필요는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세력 범위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 이교를 믿는 미개인이 살고 있는 지역과 차차 좁아지면서 이 지역과 접한 현존의 고등 종교는 이미 주어진 기회를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옛날에 오론테스 강으로부터 티베르 강까지 진출한 성 바오로는 지중해보다 더 넓은 바다를 건너 진출을 시도하였다. 그는 포르투갈의 캐러벨선에 편승하여 희망봉을 돌아 두 번째의 인도 여행을 시도하였으며, 또 더 멀리 말래카 해협을 지나 세 번째의 중국 여행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지칠 줄을 모르는 이 사도는 이번에는 에스파냐의 갤리언선으로 바꾸어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여 카디스에서 베라 크루스로 향했고, 다시 태평양을 횡단하여 아카풀코로부터 필리핀으로 갔다. 이처럼 서유럽 문명 세계의 교통로를 이용한 현존 종교는 서유럽 그리스도교뿐만이 아니었다.
그리스정교, 장도의 여행
그리스정교 역시 서유럽식의 화기를 가진 카자흐 개척자의 뒤를 쫓아 카마 강으로부터 오호츠크 해에 이르는 장도의 여행을 하였다. 19세기의 아프리카에서는 성 바오로가 스코틀랜드의 전도 의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으로 모습을 바꾸어 복음을 전도하고, 병자를 치 료하며 호수와 폭포를 발견하는 동안에 이슬람교도 활발하게 진출하였다. 옛날에 잇달아 공로를 따라 마가다로부터 뤄양에 도착한 대숭 불교도 언젠가는 이 놀라운 대여행을 상기하여, 옛날에 중국 문명이 인쇄 기술을 이용한 것처럼 비행기와 라디오 같은 서유럽 문명의 발명 품을 전도 활동에 이용할 것이다. 이와 같이 전 세계적 범위로 전도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일어나는 문제는 단순히 교회 지정학상의 문제뿐만은 아니다. 기성 고등 종교가 새로운 전 도 지역으로 들어감에 따라 과연 종교의 영구 불변의 본질과 그 일시적인 유성은 구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리 고 종교가 서로 충돌하는 데서 결국 이들 종교가 공존공영할 수 있는지, 아 니면 그중 하나가 다른 모든 종교를 밀어젖혀 버릴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종교적 절충주의 이상이 학식 있는 동시에 감수성 많은 마음을 가진 23명 의 세계 국가 지배자 이를테면 알렉산더 세베루스(로마 황제)와 악바르의 관심을 모았으나, 이들 두 사람의 실험은 무엇 하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았다.